
한때 사회의 해충을 제거하는 일을 해온 사람이 있습니다. 이름은 ‘조각’. 그녀는 60대 여성 청부살인업자입니다. 이 소설 『파과』는 바로 이 조각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킬러’라는 설정에 다소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그녀의 삶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게 됩니다. 그리고 깨닫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범죄나 액션을 다루는 소설이 아니라, 한 인간의 고독과 상처, 그리고 미약하지만 분명 존재하는 회복의 가능성을 담아낸 작품이라는 것을요.
조각은 자신을 ‘방역업자’라고 부릅니다. 오염된 존재를 제거하는, 말 그대로 사회의 불순물을 처리하는 사람이죠.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누군가를 죽이는 일에 감정을 섞지 않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의 몸도 마음도 서서히 늙고 약해져 갑니다. 그녀는 더 이상 완벽한 도구가 아닙니다. 이쯤이면 은퇴를 고민할 법도 하지만, 조각은 여전히 일을 이어갑니다. 그것이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이었고,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삶에 예상치 못한 균열이 생깁니다. 늙고 병든 개 한 마리를 데려오게 된 것입니다. 이름은 ‘무용’. 무용하다는 그 뜻 그대로, 아무 쓸모도 없다는 의미를 가진 이름입니다. 하지만 조각은 그 무용이라는 존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먹이를 주고, 몸을 씻겨주고, 함께 잠을 잡니다. 그렇게 그녀는 점점 무용과 정을 나누게 됩니다. 이 늙은 개는 조각에게 처음으로 ‘살리는 관계’를 경험하게 해줍니다. 누군가를 보호하고 돌보는 감정. 그녀는 그것이 낯설면서도 어딘가 마음 한구석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것을 느낍니다.
『파과』라는 제목은 ‘상처 난 과일’을 의미합니다. 멀쩡해 보이지만, 이미 속은 멍들고 금이 간 상태를 말하죠. 조각의 삶도 그렇습니다. 어쩌면 그녀는 오랫동안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왔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금이 가 있었던 것입니다.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살아온 삶, 감정을 버리고 인간관계를 끊은 삶은 결국 그녀 자신을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무용과의 만남, 그리고 젊은 킬러 ‘투우’와의 관계는 그런 조각에게 또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투우는 그녀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기도 하고, 어쩌면 그녀가 넘겨주어야 할 미래이기도 합니다. 그 관계 속에서 조각은 혼란을 느끼고, 묵묵히 쌓아온 삶의 벽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깁니다.
이 소설은 액션이나 긴박한 서사보다도, 조용하고 묵직한 정서로 독자에게 말을 겁니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 외로움에 무뎌진다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다시금 사람을 만나고 감정을 회복해 나간다는 것. 조각의 이야기는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작은 흠집 하나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우리는 모두 완전하지 않으며, 때로는 파과처럼 상처 입은 채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런 상처 속에서도 다시금 따뜻함을 느끼고, 누군가에게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구병모 작가는 『파과』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봅니다. 『위저드 베이커리』로 잘 알려진 그녀는 이번 작품에서도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조각이라는 인물이 지닌 고요한 슬픔과 희미한 회복의 가능성은, 독자들에게 긴 여운을 남깁니다.
최근 『파과』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배우 이혜영이 조각 역을 맡아 노년 여성 킬러의 삶을 깊이 있게 표현했으며, 김성철이 연기한 투우는 원작의 분위기를 잘 살려냅니다. 영화는 원작의 묵직한 정서를 스크린에 옮기며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합니다.
『파과』는 단순히 특별한 이야기라기보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흠집’과 닿아 있는 이야기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상처 입은 삶도 누군가를 통해 다시 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전해주는 이 소설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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